
롱블랙 프렌즈 B
서교동을 지나다 재밌는 이름의 서점을 하나 발견했어요. ‘당인리책발전소.’ 망원동 1번 출구로 나와 옆 골목가를 100미터 쯤 걷다 보면 나오는, 빨간 벽돌 건물이에요.
알고 보니 아나운서 김소영 씨가 운영하는 책방이었죠. 2017년 합정에 1호점을 낸 것을 시작으로 6개월 만에 위례에 2호점을 냈고, 지금은 광교점과 함께 망원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홍대점, 위례점, 광교점을 운영하다 위례점은 현재 폐점했다. 당인리 본점은 2019년 9월 망원동으로 이사했다.
약 40평짜리 서점이지만 영향력이 커요. 당인리책발전소의 베스트셀러 목록이, 대형 서점 판매량 순위에 영향을 미치죠. 출간 몇 년 전 나온 책이 역주행 하기도 했습니다.
김소영 대표는 책방만 운영하는 게 아닙니다. 브론테BRONTE라는 온라인 큐레이션 커머스도 운영하고 있죠. 평소 그의 사업을 관심 있게 봐온, 김락근 인스턴트펑크 대표와 함께 김소영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김락근 인스턴트펑크 대표
한때 김소영 대표는 ‘오상진 아나운서 부인’이라는 수식어로 알려졌습니다. 이제는 ‘방송인 김소영’을 넘어 ‘사업가 김소영’으로 더 많이 수식돼요.
김 대표는 당인리책발전소로 유명하죠. 저는 브론테라는 라이프스타일 이커머스에 더 주목해왔어요. 요즘 커머스 업계는 고민이 많아요. 대부분의 커머스가 비슷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고, 경쟁이 심화됐죠.
‘넥스트 커머스’에 대한 담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책발전소부터 브론테까지 이어지는 김 대표의 행보를 넥스트 커머스의 사례로 들고 싶어요. 넥스트 커머스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요소, 오프라인·팬덤·인플루언서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에요.
Chapter 1.5년차 아나운서, 주도성을 찾아나서다
방송인 김소영의 커리어는 탄탄대로였어요. 아나운서 2년차에 지상파 방송국의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 앉았죠. 정작 그는 성에 차지 않았다고 해요.
오랫동안 안전 지향적인 선택을 해온 그로서는 의아한 감정이었어요. 적성보다는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고, 방송국에 들어간 뒤엔 뉴스 앵커가 되겠단 목표를 이뤄냈죠. 퀘스트를 모두 깨고 나니, ‘정말 원하던 거였나?’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내용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최저임금이 얼마로 올랐다’는 보도에서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영업자에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국가 경제엔 어떤 영향이 가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었죠. 뉴스의 방향이나 제작 환경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지만, 전 연차가 낮은 한 명의 직원에 불과했어요. 한 조직 안에서 주어진 30%가 아닌 80%, 90%의 일을 하고자 하면 결국 ‘나대는’ 사람이 되잖아요.”
점점 더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어진 그에게, 뉴스와 조직이 평면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김소영은 자신이 100%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조직을 떠납니다. 2017년, 5년간의 아나운서 생활을 그만뒀어요.
그해 11월, 김소영은 퇴직금 3000만원을 들여 서점을 차렸습니다. ‘아나운서 김소영과 오상진이 운영하는 북카페’로 이름을 알린 당인리책발전소입니다. 왜 하필 마진율 낮은 서점 사업에 뛰어든 걸까요?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업가가 되겠다는 마음보다는, 제일 잘할 수 있는 걸로 시작해 보자는 마음이었죠. 그게 서점이었던 건 책이 늘 제 곁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김소영 대표는 어릴 적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고 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로 찾아오는 ‘이동도서관’ 트럭 앞에 1등으로 서 있곤 했죠.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방을 여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책을 판매해 벌 수 있는 돈이 턱없이 적다는 건, 책방 문을 열고 나서야 알았어요. 오프라인 서점 이익률은 크게 잡아도 10~20% 남짓이에요. 보통은 임대료 내기에도 벅차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 싶었죠. 그런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 걸 미리 다 안다면, 우리가 세상에 도전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성수동 브론테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임하고 있는 김소영 대표. 김 대표는 5년간의 아나운서 생활을 접고 서점을 차리며 사업에 도전했다. ⓒ롱블랙
Chapter 2.대형 서점보다 조밀하고, 전문 서점보다 대중적인
김소영 대표는 처음 당인리책발전소를 열면서 콘셉트를 거듭 고민했다고 합니다. 동네 책방 중에는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다루거나, 특정 장르만 파는 마니아 책방들이 있죠. 둘 다 김 대표의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고민 않고 바로 펼쳐볼 만한 책들이 모여 있을 때, 저는 가장 만족스러웠어요. 그런 양질의 책이 모여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그럼 내가 직접 추천해 보자고 생각했죠.”
김 대표가 독서 큐레이션의 효용성을 처음 깨달은 건 아나운서 시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열독가가 아니란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추천하면 기꺼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또한 알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주말마다 책을 직접 낭독하고, 추천한 적이 있어요. 청취자 분들이 ‘책 정말 안 읽는데 덕분에 좋은 책 많이 알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죠. 그때처럼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들어와도 한 권씩 사들고 가는 서점을 만들고자 했어요.”
합정동에 위치했던 당인리책발전소 1호점 모습. 2017년 당시 당인리책발전소 서가에 꽂힌 책은 몇십 권에 불과했다. ⓒ책발전소
큐레이션으로 읽는 습관을 만드는 서점
어떤 책들이 책발전소에 채워질까요? ‘큐레이션 된 책’이라고 해서, 처음 들어보는 책이나 김소영 대표의 취향으로만 이뤄진 서가를 상상했습니다. 망원동 당인리책발전소 서가에 꽂힌 약 2000권의 책은 생각보다 친숙했어요. 대형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들도 자주 보입니다. 『킨포크KINFOLK』 같은 매거진이나, 세계문학전집도 있죠.
“생각보다 책들이 평범하다”고 하자 김소영 대표가 되물어 왔어요. “책 지식이 가장 많은 사람의 추천이 과연 가장 좋은 추천이겠느냐”고 말예요.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는 거였죠.
“책을 너무 좋아하는 사장님이, 고차원적인 책들만 골라놨다고 해볼까요? 쉽게 손이 안 갈 거예요. 좋은 큐레이션이란 ‘지식의 끝판’이 아니에요. 나보다 조금 더 알아본 사람이 친근하게 눈높이에 맞춰 해주는 추천이죠.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책을 골랐느냐보다, 여기서 책을 사면 실패가 없다고 느끼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책발전소에는 한줄평을 담은 손글씨 쪽지가 책표지마다 붙어 있어요.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는 “불륜 이야기를 파괴적일 정도로 솔직히 담은 책. 읽다 보면 ‘칼 같은 글쓰기’의 대가를 만나게 된다”고, 『제가 한 번 해보았습니다 - 남기자의 체헐리즘』에는 “직접 해본다는 것. 그 단순함에서 얻어지는 신뢰와 설득력에 빠져보라”고 적혀 있어요.
메인 서가의 디스플레이도 대형 서점과는 다릅니다. 보통은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두죠. 책발전소는 분야별로 현장 직원이 추천하는 도서를 가장 먼저 전시해요.
뭐니뭐니 해도 책발전소의 시그니처는 따로 있어요. 전지에 손글씨로 쓴 베스트셀러 리스트입니다. 대형서점의 리스트와는 좀 다릅니다. 3월 마지막 주 기준, 당인리책발전소의 1위 도서는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 예요. 한편 교보문고의 1위 도서는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 입니다. 당인리책발전소 베스트10 안에는 세이노가 없습니다.
공간은 어떨까요? 책과 함께 디저트와 음료를 팔아요. 김 대표는 책을 읽을 때 뭔가 먹거나 마시기를 좋아해요. 썩 우아하진 않지만 입을 채우면서 책 읽는 게 그에겐 최고의 휴식이라고 해요. 자연스럽게 사람을 머무르게 하려면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손님이 목말라서, 배고파서 책방을 나가지 않도록요.
1층에서 책과 음료를 구매하고, 2층에 올라가 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 2층은 대부분이 1인석이에요. 직원은 2층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보 속을 유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정보를 바로 검색하기보다, 맥락을 이해할 때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죠. 그분들이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아 읽다 가는 곳이면 좋겠어요.”
문을 활짝 열어둔 망원동의 당인리책발전소. 1층은 서가, 2층은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형 좌석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발전소
Chapter 3.책발전소북클럽 : 취향을 맡기기 시작한 독자들
책발전소 큐레이팅의 정수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책발전소북클럽’입니다. 책발전소가 2021년 시작한 온라인 북클럽이에요. 김소영 대표와 매달 다른 작가·셀럽이 큐레이터가 되어 책을 선정하고, 독자의 집으로 책을 보냅니다. 어떤 책이 도착할지는 블라인드예요. 2월에는 김소영 대표가 인문 에세이 『돌봄과 작업』을, 김금희 작가가 이주혜 작가의 소설 『자두』를 소개했습니다.
“소설 좋아하는 사람은 소설만, 자기계발서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계발서만 읽죠. 책발전소 북클럽에선 편식이 불가능해요. 큐레이션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내 취향을 저격해주기만 바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발견의 기쁨이란 것도 있는 거잖아요. ‘책발전소 덕에 다양한 책을 읽게 됐다’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취향을 설득하는 도구가 바로 ‘큐레이션 레터’입니다. 매달 김 대표는 A4 용지 5장 분량의 편지를 써서 책과 함께 보내죠. 단순히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게 아닌,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이 책이 갖는 의미가 큐레이터의 시선으로 쓰여 있습니다.
덕분에 북클럽은 론칭 2년 만에 누적 독자가 6만 명에 육박합니다. 매달 약 2000여명의 신청자가 있어요. 책으로 치면 1쇄를 찍을 수 있는 정도예요.
김 대표는 북클럽의 또 하나의 매력 장치로 ‘책발전소에디션’이라는 단독 리커버 표지를 꼽습니다. 책발전소는 회원에게 책을 보낼 때, 매번 단독 표지를 만들어요.
“책은 물성이 중요해요. 무거운데도 e북이 아니라 종이책을 갖고 싶은 건, 물성이 주는 기쁨 때문이죠. 단독 표지를 찍는 건 그 기쁨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에요. 나만 가질 수 있는 조금 더 특별한 책이란 뜻이니까요.”
김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구독 비즈니스 모델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구독 서비스로 성공하려면 단가나 품질만으론 부족할 수 있겠더군요. 매번 히트 콘텐츠만 주진 못할 테니까요. 즉, 가격 이상의 특별함을 선사할 때 소비자는 구독할 마음을 먹습니다. 북클럽의 단독 표지처럼요.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책발전소에디션. 책발전소는 단독 리커버 표지를 통해 물성으로서의 책의 의미를 더한다. ⓒ책발전소
Chapter 4.브론테 : 책에서 라이프스타일로, 서점에서 이커머스로
2020년 9월. 김소영 대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어요. 브론테라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커머스를 론칭했죠.
시작은 팬데믹이었어요. 금방 지나갈 것 같았던 풍파가 지속됐고, 김 대표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느꼈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라이프스타일 커머스였을까요?
“책 자체가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콘텐츠잖아요. 책과 라이프스타일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했어요.”
책발전소를 ‘누구에게나 열린 서점’으로 기획했듯, 브론테는 ‘내 취향을 잡아가는 사람’을 위한 커머스로 기획했어요.
“브론테의 타깃은 ‘나의 취향을 알고 싶고, 일상의 밀도를 높이고 싶은 여성’이에요. 이미 내 취향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추천이 필요 없겠죠. 브론테의 페르소나는 아무거나 쓰고 아무거나 먹고 싶진 않은데, 시간이나 노력을 들이기 어려운 여성이에요.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이 대신 나선다면, 기꺼이 믿고 사겠다는 소비층이죠.”
감자빵, 조셉앤스테이시, 아로마티카… 브론테에서 소개하는 브랜드는 굉장히 고가의 브랜드나, 니치한 브랜드만이 아닙니다. 대중적인 브랜드가 20~30%를 차지하죠. 여기에 독일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보난자, 비건 뷰티 브랜드 아렌시아 같은 신선한 브랜드가 더해지는 식이에요.
그 달의 큐레이션 제품은 공동구매 방식으로 팔아요. 큰 할인율과 일주일 미만이라는 짧은 판매 기간을 경쟁력으로 내세운 거예요. 비건 뷰티 브랜드 멜릭서 제품의 경우, 신상품을 일주일 동안 50% 저렴한 가격으로 선공개했죠.
“제품의 가격대나 종류를 일부러 제한하지 않아요. 의식주 중 그 무엇으로도 일상의 밀도는 높일 수 있잖아요. 감자빵처럼 새로운 미식 경험을 통해서, 그릇처럼 단순한 생활용품을 통해서. 그 품목이 유명세가 있든 없든, 익숙하든 낯설든, 중요한 건 ‘얼마나 세련됐냐’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얼마나 삶의 밀도를 높여주는가’예요.”
브론테가 소개하는 브랜드의 20~30%는 대중적인 브랜드다.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은 ‘얼마나 세련되고 감각적인가’가 아닌 ‘결과적으로 일상의 밀도를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브론테
Chapter 5.김소영이 물건을 바라보는 방식, 일상의 스토리텔링
고객이 브론테에서 물건을 사는 이유는 ‘추천하는 사람의 시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선을 볼 수 있는 곳이 브론테와 김 대표의 인스타그램입니다.
브론테는 기획 과정에서부터 인스타그램에 스토리텔링을 시작합니다. 출시 전부터 수차례의 미팅과 제품 제작 과정을 업로드하기도 하죠.
김 대표는 “우리가 언제 진짜 물건을 사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감도에만 집중한 커머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내부에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리 세련된 사람은 아니에요. 백화점이나 편집 매장을 둘러봐도 무조건 사지는 않죠. 가심비, 나의 주관적 만족도를 중시하는 편이랄까요. 저 같은 사람들은 언제 물건을 살까요? 나와 라이프스타일이 얼추 비슷한데, 나보다 조금 더 많이 알아보고 산, 친한 언니가 추천할 때예요. 별 고민 없이 믿고 구매하죠. 결국 추천하는 사람이 물건을 바라보는 방식, 그걸 믿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김 대표는 물건을 소개하기 전 직접 제품을 오래 써봅니다. 직장인 시절부터 사용했던 독서등을 판매하기도 했어요. 충분히 일상의 포인트를 찾았다고 생각 들면,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인스타에 업로드합니다. 아침 출근길 택시를 타고 이동하며, 아침에 먹은 빵이나 사용한 그릇을 공유하는 식이죠.
김 대표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일상의 포인트를 찾는 것’입니다. 그는 “이 제품이 감각 있고 세련됐다”고 말하지 않아요. “어디서나 휘뚜루마뚜루 사용할 수 있다”고, 눈높이에 맞춰 설명합니다.
한편으론 의문이 들었어요. “이른바 인플루언서 공동구매와, 브론테는 무엇이 다른가요?”
“인플루언서 비즈니스에 대한 편견이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유명세를 기반으로 물건 파는 거 아니야?’라고 한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중요한 건 물건을 받는 사람들이 실제로 즐겁고, 행복한 것 아닐까요?”
오픈 6개월 뒤부터는 브랜드들이 먼저 입점을 요청해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벤앤제리스, 바샤커피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도 협업하죠. 그중엔 자사몰 판매만 고집하던 브랜드도 있어요. 속옷 브랜드 ‘더잠’이 그랬죠. ‘타자의 시선으로는 우리 브랜드를 잘 알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요.
그런데 김 대표가 판매 브랜드의 제품을 직접 써보며,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을 바꿨다고 해요. ‘이 사람이 우리 브랜드를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더잠’은 지난해 브론테의 스페셜 오더 기간 중 브랜드 검색량이 120%나 증가했다고 해요.
브론테가 잘되는 건, 김 대표의 유명세 덕분은 아닐까요? 브론테는 오픈 첫 제품부터 완판됐어요. 첫 제품이었던 책장은 10차 넘게 리오더에 들어갔죠. 초기에는 ‘김소영의 셀링 파워’가 있었다고, 김 대표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해요. 김 대표의 인스타그램에서 넘어오는 고객은 전체의 10% 내외에 그칩니다. 2022년 거래액은 전년 대비 90%, 2023년 1~2월 거래액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00% 성장한 건, 김소영 개인을 넘어선 브론테라는 브랜드의 파워라고 말해요.
브론테 사무실에 전시돼 있는 큐레이션 제품과 오리지널 제품들. 현재 김소영 대표의 SNS로 유입되는 브론테 고객은 10% 내외에 그친다. ⓒ롱블랙
Chapter 6.마치며 : ‘사업가 김소영’을 선택하다
종종 김소영 대표의 SNS에선 사업가의 고단함이 읽힙니다. 늦은 밤, 엑셀에 회사 장부를 띄워 놓고 고민하거나, 직원들과 야근하다 야식을 시켜 먹는 모습이 올라올 때예요.
궁금했습니다. 김소영이란 사람은 왜 사업가가 됐을까요? 탄탄했던 방송인 커리어를 쭉 택했다면 더 유명하고, 더 여유로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요?
“제가 사업으로 재력을 얻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만약 사업이 아니라 철저하게 셀러브리티의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벌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생각보다 저는 자기 효능감이 중요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됐어요. 책방 운영하고 사업하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한 건데, 그게 참 기분 좋아요.”
김 대표는 ‘운영하면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겉보기에는 성큼성큼 움직이는 사람 같죠. 2017년 11월 책방 1호점을 열자마자 6개월 만에 위례점을 오픈했고, 그로부터 1년 광교점을 오픈했어요. 창업 4년여 만에 브론테를 시작하며 연쇄 창업가가 됐고요.
정작 김 대표는 신중하게 움직였다고 말해요. 2020년 말 브론테를 론칭했는데 독립 사무실을 낸 건 2021년 5월이었죠. 그전까지는 브론테 초기 멤버들이 책방으로 출퇴근하며 회의를 했다고 해요.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위례점은 긴 줄이 생기곤 했던 1호점을 생각해 ‘넓은 공간’에 욕심을 부렸어요. 120평의 공간에 서점을 꾸렸지만, 상권과 교통이 좋지 않아 3년 만에 폐점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초반 2~3년간은, ‘내가 지금 사업을 한다’는 인지조차 못하고, 일에만 빠졌던 것 같아요. ‘내가 이 고생스러운 걸 왜 하지?’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가 들어왔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고민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지금도 7년 차 초보 대표라며, 매일 직원들한테, 고객들한테 배우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어요.
“실패가 있었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실패가 아닌 배움이었어요. 이를테면 브론테도 1년 정도는 매출 목표가 없었어요. 그때는 우리가 어떤 물건을 제안했느냐, 얼마나 멋진 브랜드를 소개했느냐가 중요했으니까요. 그렇게 실험하듯이 움직였기에 늘 배울 수 있는 거예요.”
김소영 대표는 “나는 매일 배워나가는 중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7년째 책발전소를 운영하며, 사업의 카테고리를 활발히 확장하고 있다. ⓒ롱블랙
롱블랙 프렌즈 B
처음엔 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저 ‘김소영’이란 이름만으로 사업이 이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직접 만나 보니 알 수 있었어요. 사업가 김소영의 진지한 태도와, 이름 석 자를 넘어선 브랜드 파워를요.
김소영 대표의 인사이트, 요약해 봤습니다.
1. 김 대표가 운영하는 책발전소의 콘셉트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책방’입니다. 책을 안 좋아해도, 책발전소에 들르면 책 한 권 건질 수 있는 큐레이션 서점을 기획했죠.2. ‘눈높이에 맞춘 큐레이션’이 핵심이에요. 책발전소에는 대형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책도 골고루 자리를 차지합니다.3. 김 대표의 새로운 사업 브론테는, ‘취향을 잡아가고 있는 사람’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큐레이션합니다. 제품 카테고리나 가격대를 일부러 제한하지 않죠.4. 사람들이 제품을 구입할 땐 ‘신뢰 가는 사람의 추천’에 의지합니다. 김 대표는 바로 그 점을 소구해 익숙한 말로 인스타그램에 일상 속 스토리텔링을 올립니다.5. 김 대표는 여전히 배워가는 사업가입니다. ‘자기 효능감’을 느끼며 꾸준히 일을 벌이고 있죠. 그게 사업의 동력이라고 합니다.
김 대표는 “내가 사업가라고 생각하게 된 건 불과 1년 사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막 그가 하는 일에 정의를 내리고 있는 단계죠. 사업가 김소영이 더 단단해지면, 그의 브랜드는 어떤 모습으로 커갈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