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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과 일문일답 : 마켓오·비비고, 200개 브랜드 키운 전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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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프렌즈 C 

요즘 재밌게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어요! ‘큰손 노희영’. 마켓오, 비비고부터 올리브영과 CGV까지. 노희영 고문의 손을 거쳐 대중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됐죠. 그 결과, 외식업계에서 노 고문은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고 있어요.

노 고문이 그간 론칭한 브랜드는 200여 개. 문을 연 매장은 2500개가 넘죠. 그의 활약은 40년 가까이 이어져요. 3개월 전에 연 유튜브 채널은 어느덧 구독자 18만 명을 넘어섰죠.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드는 감각, 뭔지 너무 궁금했어요. 윤경혜 눈이부시게 대표가 마침 그를 잘 안다고 했어요. 함께 찾아가 물었어요. 브랜드를 만드는 실력을 어떻게 키우는지를요.


윤경혜 눈이부시게 대표

1963년생, 올해로 62세가 된 노희영 고문의 이력은 화려합니다.

시작은 단추 디자이너였어요. 그는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기도 전에 국내 1세대 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에 자신이 만든 단추를 달았어요. 당시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죠.
*도나 캐런Donna Karan,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등의 디자이너를 배출한 뉴욕 맨해튼의 세계적인 패션스쿨.
**지춘희, 김영주, 故하용수 디자이너.

이어 F&B에도 도전했습니다. 1989년 바스타 파스타를 시작으로 궁, 호면당, 느리게 걷기, 그리고 마켓오까지. 모두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식당이었죠. 

브랜드 전략가로 활약하기 시작한 건 2010년. 마켓오 브라우니의 성공으로 오리온 부사장을 거쳐, CJ의 브랜드전략 고문이 됐어요. 그때 만든 게 비비고입니다. ‘한식 세계화’의 꿈을 안고 제안한 브랜드였죠. 

사실 이력 못잖게 다채로운 게 그에 대한 대중의 평가입니다. 팬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가 브랜드를 키웠다는 말에 “혼자서 다 한 것처럼 말한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죠. 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Chapter 1.
조직에 뼈를 묻지 마세요

노희영 고문에게 가장 예민할 질문부터 했습니다. 대중의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나는 기획자예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죠. 브랜드 만드는 일은 당연히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대신 최초로 제안은 제가 했다는 거예요.”

Q. 사실 그렇지 않나요. 획기적인 아이템을 만든 조직 출신이 밖에 나오면 ‘내가 만들었다’고 하는 거요. 반대로 본인 아이디어인데도, 조직 밖에 나오면 몇 년간 언급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죠.

“조직과의 딜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비비고를 만들었다’고 사람들한테 얘기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갤럭시도, 제네시스도 누군가 만들었을 거잖아요. 왜 그들은 자기가 만들었다고 말을 못 하는 걸까요. 

그건 겸손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반면 조직과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협상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죠. 나는 조직에 들어가면 회장님하고 먼저 그 일부터 했어요.”

Q. 협상부터 했다는 건가요.

“네. 딜을 먼저 해야 해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전 항상 ‘여기까지는 권한을 저한테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어요.

대기업은 부서별로 다 이기적이거든요. R&D 따로, 마케팅 따로, 영업 따로, 생산 따로잖아요. 만약 내가 뭘 하려고 해. 그럼 생산팀에서 ‘그건 안 됩니다’하고,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라고 마케팅팀에서 말하고. 그러다 보면 성질이 더럽지 않으면 못 하는 거예요. 처음엔 둥글둥글하게 일을 하고 싶었는데, 강하게 밀어붙일 때가 있었죠.

어떤 일을 할 때 팀이 서로 가로막는 게 싫어서, 저는 항상 다 같이 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걸 제안했어요. 임원들 빼고 현장에 있는 부장과만 일하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죠. 제가 아무리 새로운 걸 끌고 가려 해도 고여있는 임원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많았거든요. 이렇게 얘기하면, 거기서부터 임원들한테 미움받기 시작했어요.”

Q. 조직에서 미움받고 버려질까 두렵진 않았나요.

“조직에 오래 있고 싶은 사람과, 이 조직을 이용해 빨리 나의 성과를 만들고 떠나겠다는 사람의 차이예요. 조직에 뼈를 묻지 마세요. 남의 회사인데 왜 거기서 뼈를 묻으려 하는 거예요. ‘취할 거만 취하고 자기 밸류value・가치를 높이라’고 저는 항상 말해요. 그러면 조직이 붙잡는 사람이 될 거예요. 빨리 얻고 떠나려는 사람은 성과를 만들어내니까요.”

롱블랙과 인터뷰하고 있는 노희영 고문. ‘브랜드 전략가’로 활약해 온 그는, 조직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롱블랙

Chapter 2.
‘내가 특별하다’는 선민사상을 품어라

조직이 붙잡는 브랜드 전략가. 노 고문이 쌓아온 커리어를 보면 납득이 갑니다. 궁금했어요. 그를 전략가로 키운 비법이 있는지 말이에요.

Q. 무엇이 노 고문을 전략가로 만들었나요.

“콤플렉스가 나를 전략가로 만들었어요.”

Q. 콤플렉스라니, 의외입니다. 부족함 없이 자란 것 아니었나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건 맞아요. 그러나 저 나름의 콤플렉스는 있었습니다. 부족함에서 생겨난 거였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전 동생보다 못생겼어요. 동생은 여리여리하고, 예쁘게 생겼거든요. 대신 엄마는 제가 기죽지 않도록, 제게만 고급스러운 원단의 옷을 골라 입혔어요. 입고 가면 ‘이런 옷은 대체 어디서 사는 거냐’고 사람들이 물을 정도였어요. 엄마 나름의 차별화 전략을 세운 거죠.”

Q. 어머니에게서 전략가 정신을 물려받았군요.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애들이 처음에 동생만 좋아해도, 너는 성격이 좋고 인간적으로 매력이 많으니까 다 너한테 올 거야.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마.’ 그래서 저는 말을 재밌게 잘하는 제 성격을 믿었어요. 그러자 정말 처음엔 동생만 따라다니던 친구들이, 어느새 제 친구가 됐죠.”

Q. 노 고문의 첫 커리어는 단추 디자이너였죠.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들어간 계기가 있나요.

“남가주대 의예과를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했어요. 대신 내가 디자인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나름 컬러 감각이 좋았거든요. 어렸을 적 제가 엄마 옷 코디도 했으니까. 제가 고른 대로 입고 가면 주변에서 멋있다고 칭찬을 들으셨죠.

파슨스에 다니는 한국 친구에게 ‘나도 파슨스에 가겠다, 지원서 양식을 보내달라’고 전화를 걸었어요. 친구가 대번에 ‘너는 못 온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맞는 말이죠. 제가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근데 전 그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 저러나. 나도 똑똑한데 못 갈 거 있나.’ 

무작정 드로잉 기초 책을 사서 독학으로 연습했어요. 밤을 새우며 보그 잡지 100권을 베껴 그렸죠. 파슨스에서 누드 드로잉은 제가 제일 잘 그렸어요.”

Q.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도 ‘나를 믿어주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로 들립니다.

“맞아요. 그리고 브랜드도 마찬가지예요. 브랜드는 선민사상選民思想을 기본으로 해야 돼요. ‘내 브랜드는 뭔가 다르고 특별하다’는 믿음에서 시작해야 하죠. 설령 아직은 제대로 된 성과가 없다 하더라도요.

나부터 그걸 믿어줘야 소비자들도 우리 브랜드를 대접해 주지, 안 그럼 누가 나서서 귀하게 여겨주겠어요. 브랜드를 대하는 내 태도가 가치를 만드는 거예요.”

Q. 동시에 뼈를 깎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당연하죠. 브랜드가 성공했다는 건 결국 소비자한테 인정받았다는 뜻이잖아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얘기해요.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거 자체가 괴로움의 시작이라고요. 왜냐하면 그게 정말 고통스럽거든요. 콤플렉스를 극복하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근데 하고 고통스러울 거냐, 안 하고 고통스러울 거냐. 그럼 나는 하고 고통스러운 쪽을 택한다는 거죠. 그렇게 해서 성취감을 느낄 때의 희열은 달라요. 그게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기도 하고요.”

노 고문이 직접 스케치한 단추 디자인. 이 스케치를 들고 대한민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들을 찾아갔다. 그는 단추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해, F&B까지 지경을 넓혔다. ©노희영

Chapter 3.
브랜드는 수명 연장 싸움이다

수많은 브랜드가 새로 생겨나고,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브랜드’라는 말이 지겹게 들릴 정도로 많은 곳에서 브랜드와 브랜딩을 말하고 있죠.

200개 넘는 브랜드를 론칭한 노 고문은 브랜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브랜드란 무엇인지, 그리고 성공한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를요. 

Q. 브랜드란 무어라고 정의하시나요.

“상품과 비교해 볼까요. 상품은 그냥 돈을 내고 살 수 있는 걸 말해요. 그런데 브랜드는 사실 물건을 사는 게 아니에요. 그 브랜드가 갖고 있는 철학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역사. 이런 걸 사는 거라고 난 생각해요.”

Q. 뭐가 다른 건가요.

“우리가 그냥 상품으로 물건을 볼 땐, 가성비를 생각하게 돼 있어요. 원가나 가격 같은 것에 집착하죠. 반대로 어떤 물건을 브랜드로 인식하면, 브랜드가 표현하는 철학에 돈을 내는 거예요. 브랜드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죠.”

Q. 성공한 브랜드란 뭔가요.

“스토리를 잘 쌓은 브랜드죠.”

Q. 스토리를 잘 만들어도 당장 돈이 벌리진 않을 수도 있잖아요.

“시간이 필요하죠. 스토리를 쌓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들어요. 그게 쌓여야 브랜드가 되는 거지, 갑자기 만들어서 한 번에 돈 되는 브랜드는 없어요. 있다고 해도, 금방 사그라들죠. 시간이나 스토리 없이 브랜드가 된다는 건 없는 말 같아요.”

Q. 그럼 브랜드를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시작할 때부터 기획을 잘해야 돼요. 자연발생적으로 잘 만들어지는 브랜드, 옛날엔 있었어요. 장인 정신이 있다거나, 집안에 역사가 있다거나 해서요. 근데 지금 새로 만드는 브랜드들은 그걸 뛰어넘어야 하잖아요? 그러니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 하죠.”

Q. 신생 브랜드가 빨리 성공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시간과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사실 비용밖에 없어요. 그게 마케팅비죠. 결국 신생 브랜드가 빠르게 크려면 마케팅비를 쓸 수밖에 없어요. 그 비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쓰느냐의 싸움인 거죠.”

Q. 만약 마케팅비가 많이 없다면요.

“그런 비용이 없다면, 대신 진정성을 갖고 내가 발로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겠죠. 주변에 유명한 인플루언서를 찾아다니면서 설득하고 홍보한다든가. 그런데 사실 그것도 돈이 드는 일이잖아요.

만약 신규 브랜드인데 기획도 좋고 스토리텔링도 있다, 오래 쌓은 시간을 이기는 건 마케팅 비용인 건데 그것도 없다, 그러면 내 머리와 몸으로 때워야 하는 거죠. 세월이든 돈이든 내 노력이든, 등가로 성립될 수 있을 만큼의 행위를 해야 되는 거예요.”

Q. 반대로 이미 큰 브랜드가 더 성장하는 법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내가 늘 얘기하지만, 브랜드를 키울 때 투두To-do와 낫 투두Not-to-do가 아주 명확해야 돼요. 늘 경쟁자가 하는 걸 따라 하고픈 유혹이 있거든요. 그걸 참을 줄 알아야 큰 브랜드가 되는 거예요.”

Q. 그 기준을 어떻게 세우는 건가요.

“그러니까 처음에 원칙을 세워야 하는 거죠. 브랜드란 게, 결국 인간과 똑같아요. 예를 들어 난 노희영이야. 그럼 노희영다운 거, 나다운 게 있어. 내가 노희영으로 크겠다는 건 내 정체성을 지켜가겠다는 거예요.

풀무원이 이걸 잘했다고 생각해요. ‘바른 먹거리 풀무원’이잖아요. 나는 솔직히 풀무원은 그거 하나로 여태까지 먹고 살았다고 생각해요. 만약 풀무원에서 콜라 같은 게 나오면 이상하잖아요. 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것, 그게 브랜드의 생명력을 길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Q. 오래가는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이군요.

“브랜드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오래 지키려면 계속해서 무언가 액션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예방접종도 맞아야 하고, 과외도 시켜야 되고. 또 어떨 때 보면 장기 이식도 해야 하고. 예를 들면 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바꾼다거나. 그렇게 해서 수명 연장을 시키는 거죠.

브랜드는 수명 연장 싸움이거든. 브랜드에 수명은 있어요. 수명이 없을 수가 없는데, 이제 그걸 연장하기 위해 어떤 액션을 취할 것인가. 그 싸움이죠. 그런 것들을 계속 고민해야 하는 거예요.”

브랜드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쌓아야 비로소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노 고문은 말한다. 그는 기획에 참여한 브랜드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으로 비비고를 꼽았다. 비비고는 ‘생기발랄한 한식’에 관한 이야기를 일관되게 쌓아 사랑받는 글로벌 한식 브랜드가 됐다. ©비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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