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블랙 프렌즈 K
“지금의 3040은 부모보다 빨리 늙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
노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가속노화’의 시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현시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극적인 가공식품부터 불안정한 커리어까지, 우리를 빨리 늙게 만드는 요인이 너무 많단 거죠.
정희원 교수가 ‘저속노화 전도사’로 활동하는 이유입니다. 저속노화, 즉 ‘천천히 늙는 방법’이 있다는 거죠. 생활 습관만으로 뇌의 인지 기능부터 운동 능력과 피부 건강까지 지킬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해요.
정 교수가 던진 저속노화란 화두는 2024년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그가 소셜 미디어 X에 저속노화 실천법을 올리면, 하루에 100만 명이 조회해요. <유 퀴즈 온 더 블럭>, <생로병사의 비밀> 같은 방송에서도 정 교수를 초청하죠.
롱블랙이 만난 정 교수는 “단순히 느리게 늙는 게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저속노화로 “인생을 천천히, 농밀하게 맛볼 수 있다”는 거였어요. 서울 풍납동의 진료실에서 정희원 교수와 나눈 대화도 그렇게 농밀했습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교수
정희원 교수는 2012년부터 노인의학을 연구했습니다. 노인의 건강을 연구했지만, 정작 본인은 건강한 삶을 살지 못했어요. 박사과정 시절, 퇴근길에 대충 떡볶이를 먹고는,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들었죠. 그런 삶을 반복하니 3년 만에 체중이 8㎏이나 늘었어요. 덩달아 고혈압까지 생겼죠.
그때 시작한 게 ‘저속노화 식사법’이에요. 자신의 연구를 삶에 녹여보기로 한 거죠. 변화는 뚜렷했어요. 집중력이 높아졌고 스트레스는 줄었죠. 무엇보다 정신없이 흘러가던 일상을 내 속도로 맞출 수 있게 됐다고 해요.
‘내가 바뀐 걸 보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정 교수. 저속노화 실천법을 세상에 알리기로 합니다.
Chapter 1.
노인을 공부하니 20대가 보였다
정희원 교수가 몸담은 노년내과, 뭐 하는 곳일까요? 한마디로 노인에게 꼭 맞는 치료법을 제안하는 곳이에요. 병치레로 하루 수십 알의 약을 먹는 노인이 많죠. 몸에 무리가 가는 수술을 감행하기도 하고요. 노년내과는 이들에게 꼭 먹어야 할 약을 정리해 줍니다. 수술하지 않고 나을 방법도 제시해 주고요.
노년내과가 필요한 이유, 우리 몸이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전문진료과는 개별 장기를 봅니다. 소변을 자주 보면 방광약, 속이 불편하면 위장약을 처방하죠. 반면 노년내과는 조합을 봐요. 노인이 노화를 겪고 복합적인 만성 질환까지 앓으면 먹는 약이 늘어요. 그 약이 모여 문제가 되진 않을지 저희가 살피죠.”
정 교수가 노년내과에 매력을 느낀 건 2008년. 서울대 의대 본과 3학년 때였어요. 노년내과 실습 중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죠. 한 환자의 약을 줄였는데, 오히려 상태가 좋아진 거예요.
이유가 있어요. 예컨대 노년기에 특정 항우울제를 특정 혈압약과 함께 먹으면, 전해질에 문제가 생겨 의식을 처지게 만들 수 있어요. 겉으로 볼 때 코마*와 크게 다르지 않죠. 이렇게 응급실로 오는 환자가 적지 않대요. 약이 꼬이면 쉽게 넘어질 수도 있고, 심지어 파킨슨 증후군**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혼수상태
**치매 다음으로 흔한 퇴행성 뇌 질환 중 하나.
정 교수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몸은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인기 과를 마다하고 노년내과를 선택했습니다. 박사 과정까지 밟으며 노화를 공부했어요.
노화를 파고들던 정 교수. 어느 날 젊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래요. 한국의 2030 세대가 아주 빠르게 늙고 있었거든요. 2022년 기준 20대 고혈압 환자는 4만300명. 2018년(3만947명) 대비 30% 늘었어요. 같은 기간 20대 당뇨병 환자는 48%* 늘었고요. 이대로 가면 이들이 노년에 얼마나 아플지가 빤히 보였어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20대 당뇨병 환자는 2018년 2만8888명에서 2022년 4만2657명으로 증가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쓰는 것과 비슷해요. 당장은 마라탕과 탕후루를 즐기고 있지만, 그건 100년 동안 써야 하는 나의 신체 기능, 인지 기능을 끌어다 쓰는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더군요. 대사metabolism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해결하고 싶다는 사명이 생겼습니다.”
Chapter 2.
의사가 SNS를 시작한 이유
이 심각한 이야기를 전하려면, 먼저 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건강이 위협받는다”고 외쳐도 듣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정희원 교수는 노화에 대한 논문만 50편을 썼지만, 의학계에서조차 큰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병원에선) 젊은 사람의 말엔 힘이 실리지 않아요. 병원 회식에서도 어린 교수는 발언 차례가 돌아오지 않죠. 병원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중들이 다 듣도록 요란하게요.”
책을 썼습니다. 대중들이 이해할 만한 언어로 풀어서요. 그런데 책이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챗GPT에 물었대요. “내 책을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해?” 챗GPT가 조언했어요. ① SNS를 하세요. ② 책 내용을 하루에 한 쪽씩 SNS에 올리세요.
곧바로 실천했습니다. 40일 내내 책 내용을 정리해 X에 올렸어요. 어떤 날은 이미지로 만들어서, 어떤 날은 발췌해서. 꾸준히 올렸더니 한 달 만에 팔로워가 300명에서 1만 명으로 늘었어요.
지금은 7만 명의 팔로워와 매일 소통합니다. 주요 내용은 일상에서 저속노화를 실천하는 법. 하루는 열한 살 아들이 먹는 저속노화 식단을 소개했어요. 잡곡밥엔 백미를 절반만 넣고, 콩과 잡곡·찹쌀을 섞었죠. 코코넛 오일로 구운 광어와 도시락 김, 멸치볶음이 올라있어요.
팔로워들에게 미션도 줍니다. “커피에 시럽 넣지 않기”처럼요. 유저들이 저속노화 식단을 올리며 ‘저속노화’나 ‘희원쌤’을 언급하면, 꼭 찾아가서 칭찬해 줘요.
Chapter 3.
노화를 늦춰야 ‘꼰대’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좀 빨리 늙더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실컷 먹고 사는 게 행복 아닌가?’ 실제로 그가 출연한 유튜브에는 “차라리 짧고 굵게 살겠다”는 댓글이 달리곤 합니다.
정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굵고 짧게’ 살 수가 없어요. 노화를 관리하지 못하면 ‘가늘고 짧게’ 사는 겁니다. 몸과 뇌가 충분히 건강하지 않으니 여러 병을 앓으며 가늘게 살게 되고요, 건강한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빨리 죽으니 짧게 사는 겁니다.”
인생을 풍부하게 즐기고 싶다면 저속노화 습관이 필수라는 거예요. 그는 특히 “뇌 건강이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어요. 초가공식품* 위주의 식단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지기능이 네 배쯤 빨리 나빠질 수 있어요. 치매가 생기는 원인이 되죠.
*Ultra-processed foods. 가공을 많이 해 원재료의 형태는 사라지고 음식의 추출물 위주로 만들어진 식품. 라면, 탄산음료 등이 초가공식품에 속한다.
노화의 증상은 생각보다 폭넓습니다.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는 것도 노화 때문”이라고 정희원 교수는 말해요. 자신은 모두 경험해 봐서 안다고 여기는 것,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꼰대의 특징이죠.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유동지능fluid intelligence*이 떨어집니다. 30대 후반부터 전두엽 기능이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해요. 전두엽은 합리적인 판단을 도와주거든요. 전두엽이 힘을 쓰지 못하면, 공감 능력과 복합적 사고 능력이 떨어져요. 이성적으로 다른 의견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쓸데없이 화도 많아지죠.”
*문제를 해결하고 추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는 능력.
여러 측면의 인지기능이 한순간에 확 나빠지는 게 아니에요. 조금씩 변해갑니다. 정 교수도 종종 느낀대요.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기능적으로 인지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것을요.
“꼰대가 그렇게 탄생하는 겁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있죠? 툭하면 화를 내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들. 그들이 처음부터 꼰대였을까요? 아닙니다. 전두엽 기능이 떨어져 있는 겁니다. 노화를 늦추지 못하면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당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부른다
“행복을 위해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겠다”는 사람들에게 정희원 교수는 말합니다. “떡볶이, 라면 같은 걸 먹어서 불행해지는 것”이라고요.
논리는 이렇습니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 우리 뇌는 도파민을 분비해요. 이때 반대급부로 코르티솔cortisol*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함께 나옵니다. 달콤한 사탕을 먹으면 혈당이 빠르게 올라요. 그 후 혈당이 폭락하면서 코르티솔 분비를 자극합니다.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 혈당 생성, 기초 대사 유지, 항염증 작용 등을 한다.
이 호르몬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요. 푹 자지 못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은 더 치솟죠. 충동 조절 능력은 더 나빠지게 됩니다. 다시 자극적인 음식에 손을 뻗게 돼요.
“스트레스를 풀려고 술을 마시거나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먹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저속노화) 음식은 너나 절간에서 먹어라’하고 악플을 달기도 하십니다. 전 그런 분들이 가속노화 음식을 많이 드셔서 화가 많은 거라고 생각해요.”
정 교수는 “쾌락과 고통은 이어져 있다”고 말해요. 쾌락을 추구할수록 더 큰 고통을 만난다는 얘기죠.
“초콜릿이나 프라푸치노로 스트레스를 푼다고들 생각하시죠. 하지만 사실은 스트레스를 더 쌓는 겁니다. 사람 몸이 원래 그렇게 돌아가게 돼 있어요.”
쾌락은 악순환을 낳습니다. 자극적인 음식으로 집중력과 충동 조절 능력이 떨어집니다. 자연히 잘못된 선택이 이어집니다. 퇴근 후 달리기를 하려고 했지만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드는 거죠.